전통자료

[스크랩] 풍산류씨 가학연원家學淵源 2--입암 류중영

회기로 2010. 1. 24. 20:15

1) 류중영(柳仲 ) 입암(立巖)이다. 도회에서 불천위로 결정했다.
선생은 중종10년(1515)에 나서 선조6년(1573)에 졸(卒)하였다.

  

조선의 문신으로 자는 언우 호는 입암이며 본관은 풍산인데             간성(현재 강원도 고성)군수를 지낸 류공작의 아들이다.

 

중종35년(1540)에 문과에 병과(丙科)로 급제 출사(出仕)하여             장령(掌令)을 하고 이어서 황해도 관찰사를 역임했으며                    내직(內職)으로는 승지, 경연관이 되었다.

저서는 {입암집(立巖集)}이 있다.( 글: 이병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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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중영(柳仲郢):1515(중종 10, 올해)∼1573(선조 6, 계유).

본관 豐山. 자는 彦遇. 호는 立巖. 公綽의 子. 雲龍 成龍의 부친.

           1540년(중종 35) 문과 급제, 1553년(명종 8) 掌令을 거쳐   

             1564년 황해도 관찰사•經筵官 역임. 저서:『立巖集』.

▣참고:「墓碣銘」(盧守愼 撰) 󰋫집필:김태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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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명(姓名)

 류중영(柳仲영)

본관(本貫)

  풍산(豊山)

시대(時代)

1515(중종 10)∼1573(선조 6)

자(字)

언우(彦遇)

호(號)

입암(立巖)

이력(履歷)

류중영(柳仲영)

1515(중종 10)∼1573(선조 6). 조선 중기의 문신. 본관은 풍산(豊山).

     字 언우(彦遇), 號 입암(立巖).

 

아버지는 간성군수 공작(公綽)이며,

어머니는 증이조참의 연안이씨 이형례(李亨禮,교수)의 딸이다.

선조 때의 영의정 성룡(成龍)의 아버지이다.

 

1540년(중종 35) 식년문과에 병과로 급제하고, 지성균교수(知成均敎授)가 되었다.

이어 황주·상주·양주·안동의 훈도(訓導)를 역임하면서 지방교육에 큰 힘을 기울였다.

 

1546년(명종 1) 양현고직장(養賢庫直長)을 겸하였으며,

          이듬해 박사가 되었으나 파직되었다.

1549년에 전적·감찰·공조좌랑을 거쳐, 1553년에는 장령·사복시정·사간·장악원정이 되었다.

            이듬해 의주목사로 나가 국경지방의 밀수행위를 조절하고 생산을 권장하여

             크게 치적이 있었다.

1564년에 황해도관찰사로 나아가 민폐를 제거하고 교육을 진흥하는 등 선정으로 알려졌다.

1560년에 정주목사로 부임해서도 교육의 진흥과 민생의 안정에 힘썼다.

1572년(선조 5)에 승지를 거쳐 예조참의·경연관 등을 역임하였다.

 

천성이 충신(忠信)스러우며 모든 일에 성의를 다하고 대소공사에는

힘을 다하며 명예와 지위에 뜻을 두지 않았다.

저서로는 《입암집》이 있다.

      

             참고문헌

謙庵文集, 西厓集, 國朝人物考, 國朝榜目. 〈金龍國〉

 

<국조 문과 방목>

류중영(柳仲영) 

       중종(中宗)35년(1540년), 식년시(式年試) 병과 23(丙科 23)  

  

>>> 인적사항

  생년(生年)  1515년, 을해

  자(字)   언우(彦遇)

  호(號)   입암(立岩)

  본관(本貫)   풍산(豊山)

  거주지(居住地)  하회

  諡號, 封號    

 

>>> 가족사항

  부(父)   류공작(柳公綽) 간성군수

  생부(生父)    

  조부(祖父)   류자온(柳子溫)

  증조부(曾祖父)  류소(柳沼)

  외조부(外祖父)   이형례(李亨禮)

  처부(妻父)   송은 김광수(金光粹)

  자(子)   류성룡(柳成龍)

  숙(叔)   류공권(柳公權)

 

>>> 이력 및 기타  

  소과(小科)    

  특별시(特別試)    

  전력(前歷)   유학(幼學)

  품계(品階)    

  관직(官職)   감사(監司)

묘(墓)

안동 서후면 능골 금계재사 권태사묘 아래

부(父)

류공작

모(母)

연안 이형례女

배(配)

상락김씨 송은 김광수女

자(子)

운룡, 성룡

녀(女)

 

형제(兄弟)

 

문헌(文獻)

1. 류중영(柳仲영) 풍산인

안동양진당(安東養眞堂)

문화재지정 : 보물 제306호

지 정 일 1963. 1. 21.

소 유 자 : : 류상붕(柳相鵬)

소 재 지 : 안동시 풍천면 하회리 724

규모: 4×3칸, 단층 팔작지붕(대청) 총 40칸

재료: 목조와가

 

문화재 안내

이 건물(建物)은 문경공(文敬公) 겸암(謙菴) 류운룡(柳雲龍, 1539~1601) 선생(先生)의 종택으로서 하회에서 으뜸가는 고가(古家)로서 풍산 류씨 큰 종가(宗家)이다.

 

이 집은 입암(立巖) 류중영(柳仲?, 1515~1573) 선생의 고택(古宅)이란 의미로 대청건물에는 '입암고택(立巖古宅)'이란 당호(堂號)가 게판되어 있다.

 

양진당이란 당호(堂號)는 겸암 선생의 6대손인 류영(柳泳, 1687~1761)공의 아호(雅號)에서 유래한다. 현재 풍산류씨 하회 입향조인 전서공 류종혜(柳從惠)의 22대손(宗孫 柳相鵬氏) 내려운 대종택이다

 

2. 퇴계문인

류중영(柳仲영, 立巖 安東 河回, 1515~1573)

 

http://www.shinjongwoo.co.kr/name/ah/azb/vndtks/vnd14.ht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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柳仲郢 敎旨(류중영 교지)

 

명 칭 : 교지 작성연대 : 1606년 작성자 :
수취자 : 류중영 소장처 : 양진당 크  기 :

 

                                해제

이 문서는 류운룡의 부친 류중영(1515∼1573)에게 순충적덕보조공신 대광보국숭록대부 의정부 영의정 겸

경연 홍문관 예문관 춘추관 관상감의 일을 관장하며 세자사부로 풍산부원군에 추증한다는 교지이다.

 

                               원문

贈純忠補祚功臣 大匡輔國崇祿大夫 議政府領議政 兼 領經筵弘文館藝文館春秋館觀象監事 世子師

豊山府院君 柳仲郢 爲贈純忠積德補祚功臣 大匡輔國崇祿大夫 議政府領議政 兼

領經筵弘文館藝文館春秋館觀象監事 世子師 豊山府院君者  

                      萬曆三十四年十二月初一日


輸忠翼謨光國忠勤貞亮效節協策扈聖功臣 大匡輔國崇祿大夫 豊原府院君 柳成龍 考

                               依大典追贈

 

                            번역

순충보조공신 대광보국숭록대부 의정부영의정 겸 경연 홍문관 예문관 춘추관 관상감의 일을 관장하고

세자사부인 풍산부원군 류중영에게 순충적덕보조공신 대광보국숭록대부 의정부 영의정 겸

경연 홍문관 예문관 춘추관 관상감의 일을 관장하고 세자사부 풍산부원군에 추증 함.

                만력34년(1606년) 12월 초하루


수충익모광국충근정량효절협책호성공신 대광보국숭록대부 풍원부원군 류성룡의 아버지.
                 경국대전에 의거하여 추증함.

 

                               http://www.toegye.ne.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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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퇴계 이황 선생께서 입암 류중영 선생께 보내신 시

洛上河외擅勝名(낙상하외천승명)  낙동강 상류 하외마을 이름난 승지인데,

公曾於此占鷗盟(공증어차점구맹)  공은 진작 이곳에서 자연과 벗 했었지,

幾年遊宦우歸夢(기년유환우귀몽)   벼슬살이 몇해동안 돌아갈 꿈 꾸었으니,

他日丹靑感烈英(타일단청감열영)   훗날 청사에 빛나는 얼굴 뭇 사람 생각나리,

滿意烟波常在目(만의연파상재목)    가득한 물안개는 언제나 눈에 삼삼,

一毫榮진可忘청(일호영진가망청)    추호도 영욕이야 쉽사리 잊으리라,

因君起我江源興(인군기아강원흥)    그대로 인하여 강호의 흥 절로 일어나니,

欲진春風返舊정(욕진춘풍반구정)    봄바람 따라 고향으로 얼른 돌아 가고파.

     겸암정사 마루 시판에 세겨져 있는 시를 해석해서 옮김  초당  류영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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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양진당(養眞堂) - 보물 제 306호

양진당은 풍산 류씨의 대종택으로 문경공(文敬公) 겸암(謙菴) 류운룡(柳雲龍) 선생의 종택이기도 하다.

정면 4칸 측면 3칸의 단층 팔작 지붕 목조기와인데, 높은 축대 위에 세워져 누각과 같은 자태를 드러 낸다.

 

사랑채 정면에는 입암고택(立巖古宅)이라는 현판이 당당하게 게판되어 있는데, 입암은 겸암 선생의 부친인

입암 류중영 선생을 말한다.

현재 남아 있는 이 건물은 조선 초에 축조된 것으로 당호로 쓰이는 양진당은 겸암 선생의 6대 손인

영(泳)공의 호에서 취한 것이다. 양진당 현판은 근세 사람 최동진의 자필이다.


자좌오향(子坐午向, 정남향)의 남향집이며 99칸으로 전해 오지만 지금은 53칸이 남아 있다.

양진당의 사당은 크고 작은 두 동의 건물로 구성되어 있다.

 

하나는 정면 3칸 측면 2칸의 입암 류중영 선생의 불천위(不遷位 - 끼친 덕과 공이 4대만에 제사를

그만두기에는 죄송해서 국가나 사회에서 영원무궁토록 제사를 지내게 한 제도, 입암, 귀촌, 파산,

겸암, 서애, 수암공이 불천위이다) 사당이며, 하나는 정면 2칸 측면 1칸의 겸암 류운룡 선생의

불천위 사당이다. 이처럼 풍산 류씨 대종택인 양진당에는 두 위(位)의 불천위를 모시고 있다.


겸암 선생 불천위 사당 담 너머로는 마을의 역사를 말해 주듯 수령이 800여 년(650년?) 이상 된

거대한 느티나무가 보이는데, 동신으로 모시는 '삼신당'이 자리잡고 있다.

 

학록정사 옆으로 난 좁은 골목으로 진입할 수 있다. 원래 하회마을에는 두 그루의 느티나무가

있었는데 마을 외곽에 있던 나무는 화재로 소실되었다고 한다.

현재도 타고 남은 일부가 남아 있어 그 크기를 짐작할 수 있게 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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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애대감의 부친인 류중영공의 묘 조회(0) / 추천
등록일 : 2007-10-29 21:36:49

 

만력 무자년에 관찰사 권극지가 남방을 다스릴 때, 순시길에 안동에 와서 묘소를 참배하고 경내에 사는 종인들과 함께 제사를 올렸을 때, 일하는 관속들이 잘못하여 비석에 부딪쳐서 비석이 깨지니 관찰사가 곧 종인들과 의논해서 돌을 사서 깎고 다듬어 좋은 날을 택해서 고쳐 세우려 할 때, 류성룡이 또한 공의 외손이라 하여, 그에게 그 사실을 기록할 것을 부탁하였다.


그 비문의 요지는 다음과 같다.

내, 가만히 생각해 보건대 공의 훈업은 사책에 실려있고, 자손은 보첩에 갖추어져 있으며, 혜택은 일국에 미쳤으니 다시 거듭 말할 바가 없으며, 삼가 입석한 전말을 대강 기록하여 후세들에게 상고할 바 있게 한다. 보첩을 상고하건대 공을 태사라 하였으나, 예전 각자에 실려있지 아니하므로 의심스러워 감히 가입하지 못한다. 만력 16년 무자 자현대부 예조판서 류성룡이 짓고, 22세손 권오가 쓰고, 만력 16년(1588년) 윤 6월 초 3일에 세우다.


서애대감의 부친인 류중영공의 묘

서애대감의 부친인 류중영공의 묘

좌측

우측

서애대감의 부친인 류중영공의 묘

출처 : 풍류하회
글쓴이 : 이한방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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