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빈(柳贇) 1520(중종 15, 경진) ~ 1591(선조 24, 신묘)
조선 중기의 학자. 본관은 풍산(豊山). 자는 미숙(美叔).
호는 권옹(倦翁)․ 고권옹(孤倦翁). 훈도(訓導) 공지(公智)의 자.
외조는 진보훈도(眞寶訓導) 김승조(金承祖).
1554년(명종 9) 35세 때 생원초시(生員初試),
7년 뒤인 1561년에 진사초시에 합격하였으나 운이 없어
벼슬하지 못하고 학문에만 전념했다.
특히 역학(易學)에 조예가 깊었으며 당시의 정치에도 관심이 깊어
균전법(均田法)의 시행을 주장했다.
저서에 시문집인 『권옹선생문집(倦翁先生文集)』과 『역도(易圖)』가 있는데
여기에는 하도(河圖)와 낙서(洛書), 복희팔괘(伏羲八卦)와
문왕팔괘(文王八卦)를 도표로 설명하여 52개 도표가 작성되어 있다.
이 책은 주자(朱子)의 『역도(易圖)』를 기본으로 하고
소옹(邵雍;강절)의 설과, 서산채씨(西山蔡氏), 반간동씨(盤澗董氏),
사재옹씨(思齋翁氏) 등 여러 학자의 설을 모두 참고․ 인용․ 절충하였다.
이 가운데 『후천괘위배천낙서(後天卦位配天洛書)』와
『분배시방(分配時方)』 두 도표는 매우 독창적인 것으로 평가되었다.
외향인 예안(禮安)에 살았다.
녹전(祿田) 마곡서원(磨谷書院)과 하회 낙고사에 제향되었으며,
문집으로 『권옹집(倦翁集)』이 있다.
■참고문헌 : 宣城誌․ 안동하회마을(徐守鏞)
2006년 1월 13일 류현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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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 빈(柳贇):1520(중종 15, 경진)∼1591(선조 24, 신묘). 본관 豐山. 자는 美叔. 호는 倦翁.
公智의 子. 사마시 합격. 과거에 뜻을 끊고 오직 독서와 수양에 힘씀.
『性理大全』과 四書三經의 요점을 뽑아 만든 『大全節要』 한 책을 두루 읽고
이를 이황에게 질의한 바 있음. 易學에도 밝아 『易圖五十二本』을 지음.
저서:『倦翁集』. ▣참고:「行狀」(李在敎 撰) 집필:김태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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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빈(柳贇)
성명(姓名) |
류빈(柳贇) |
본관(本貫) |
풍산(豊山) | ||
시대(時代) |
1520(중종 15)∼1591(선조24) |
자(字) |
미숙(美叔) |
호(號) |
권옹(倦翁) |
이력(履歷) |
1520(중종 15)∼1591(선조24). 조선 중기의 유학자. 본관은 풍산(豊山). 자는 미숙(美叔), 호는 권옹(倦翁).
아버지는 승훈랑 지승(智承)이고, 어머니는 영양김씨(英陽金氏)로 봉사 승조(承祖)의 딸이다.
1554년(명종 9)에 생원초시, 1561년 진사초시에 합격하였으나 천거하는 사람이 없어 벼슬에 뜻을 두지 아니하고 학문에만 전념하였다.
재종질인 류성룡(柳成龍)은 빈이 지은 《역도 易圖》의 발문에서 "역도 52개는 권옹선생이 지은 것인데 모두 복희씨(伏羲氏)에 근본하여 소주(邵朱)제선생의 설을 종류별로 구별하였으니, 보는 데 편리하며 개인의 사지(私智)가 가미된 것이 없고 해설이 없이도 학자가 한번 보면 스스로 알게 되어 있어서 천지음양이 변화하는 조짐을 환히 알 수 있다. "고 하였으며,
또 이재교(李在敎)는 그의 행장에서 "근세의 정치인들이 농지자유화에만 힘쓰고 있으나, 우리나라는 지방이 편협하므로 정전제도(井田制度)를 갑자기 고치기는 힘드나 균전법(均田法)은 행할 수 있다고 한 것을 국가에서 채용하지 않은 것이 애석하다. "라고 하였다.
이로 보아 유빈은 역학에 조예가 깊을 뿐 아니라 정치학에도 일가견이 있었음을 짐작할 수 있다.
저서로는 《권옹선생문집》이 있으며, 마곡정사(磨谷精舍)에 제향되었다. 마곡정사는 1828년(순조 28)에 서원으로 승격되었다.
澗松堂文集(문고 보관) ※ 倦翁先生文集 (古上 810.819 유49?) 柳贇 (1520∼1591) ; 字 美叔, 號 倦翁, 本貫 豊山. 石印本. - [發行地不明 : 發行處不明], 1902. 2卷1冊 ; 29.3x20.2cm.
조선 중기의 학자인 류빈의 시문집이다. 류빈은 류성룡(柳成龍)의 재종숙이다. 그는 생원, 진사에 합격하기도 하였으나 벼슬에 뜻을 두지 않고 일생동안 학문에만 전념하여 이 문집 외에 《성리대전(性理大典)》·《시서역전대전(詩書易典大典)》· 《대전절요(大全節要)》 등의 저서를 남겼다. 마곡서원(磨谷書院)에 배향되었다.
이 문집은 1902년 그의 후손 하영(夏榮)이 편집, 간행하였다. 논(論)에서는 균전제(均田制)·반작록(班爵錄)·군사은농(軍師隱農) 등의 제도 실시를 주장하여 시무에 관심을 보이기도 하였다.
「역도(易圖)」는 일생 동안 연구한 《주역》의 이치를 집약한 것으로 52개의 도상(圖象)을 그리고 「역도해(易圖解)」로서 자세히 해설하였다.
그의 역학 이론은 하도(河圖)를 체(體)로 삼고, 낙서(洛書)를 용(用)으로 삼아 자연과 인간과의 관계를 설명하고 있다.
序 ; 李晩佐.
目錄.
卷之 1. 年譜. 賦 ; 剝復, 天根. 論 ; 獵較, 受媚珠, 荀公達去惡不去不止, ?錄, 鑄刑書, 遺書, 文記序. 易圖 ; 河圖生統成數, 洛書奇統偶數, 河圖爲十, 洛書爲十, 河圖爲十五, 洛書爲十五, 河圖相生, 洛書相克, 河圖相克, 洛書相生, 河圖老少互藏, 洛書陰陽消長, 先天分居河洛(2), 後天合河洛(2), 伏羲則圖畵卦(2), 天地四象(2), 伏羲八卦次序, 次序畵卦, 相交動靜(2), 方位縱橫, 與天地造化合, 正反卦位, 方位黑白, 六十四卦次序, 次序畵卦(2), 橫圖互體, 合體有互, 天包地?, 陰陽順逆, 圓圖對待, 圓圖從中起, 方圖對待, 方圖從中起, 方位黑白, 分配節侯, 圓圖互體, 文王八卦次序, 八卦方位, 改易先天(2), 八掛分配時方, 卦變, 上下經次序, 抗卦卦畵, 抗卦黑白, 蓍策各樣. 易圖註, 圖說, 參同契納甲圖, 楊輝六十甲子納音起例.
卷之 2. 附錄 ; 易圖跋, 易圖識, 易圖解, 易圖記疑, 行崙, 家狀草記, 行狀, 墓誌銘, 墓碣銘, 磨谷書院常享祝文, ?錄. 跋 ; 柳夏榮.
易圖(奎9884), 柳(朝鮮) 著. 1冊(40張) 圖 木板本 39.3×26.3cm. 四周單邊 半郭:28.2×22cm. 13行 1行 14字. 1576년(宣祖 9), 柳贇이 易學에 관계있는 諸圖象과 또 易學의 諸說을 참고하여 총 52件의 圖象을 지은 것이다. 柳成龍(1542∼1607)보다 몇 10년 先輩인 것으로 보인다. 柳贇의 字는 美叔인데 倦翁은 自號였던 것으로 보인다.
대대로 풍山 사람인데 宣城의 西村에 隱居하여 한 평생 經傳을 연구하여 杜門潛思하였으며 특히 易學에 造詣가 깊었다고 한다.
그러나 누구에게도 말을 하지 아니 하였으므로 비록 隣里에서 서로 아는 사람들도 그가 學問이 깊은 것을 아는 사람이 없었다.
그가 이미 죽은 후에 비로소 그의 글이 세상에 알려지기 시작하였다고 하는데 本篇 이외의 著書는 찾아볼 수 없는 듯하다.
朱子의 易圖는 孔子의 大傳을 주로 하였고 또 邵雍의 說을 참고하였는데, 이 易圖에서는 朱子의 易圖를 근본으로 하고, 諸儒(西山蔡氏盤澗董氏 思齋翁氏 玉齋胡氏 新安程氏 雙湖胡氏 雲峯胡氏 ??陽董氏)의 說을 참고로 하였으며 周易의 本經과 ≪圖說≫, ≪啓蒙≫, ≪會通≫ 등의 諸書에서 간추려 뽑아 圖象化한 것이다.
그리고 圖象을 그리는데 어떤 것은 몇 가지 뜻을 合쳐서 그리고, 또 어떤 것은 한가지 뜻을 나누어 그리기도 하였다.
예를 들면 八卦의 位를 縱橫 逆順으로 볼 때 그 뜻은 다르더라도 形勢가 合치지 않을 수 없어 합쳐 놓았고, 河圖 主常之義에 數가 각각 마땅함이나 洛書 主變之義에서 數가 마땅치 못함이 비록 그뜻은 하나이나 形勢上 부득불 나누어 놓지 않을 수 없어서 나누어 놓았다.
그리고 또한 卦畵之圖는 하나인데 그 圖中에 중첩되는 것이 있을 때 그 뜻에 따라 나누어 圖象化하기도 하였다. 이 易圖는 거의 모두가 先儒들의 說을 따른것이다.
그러나 오직 「後天卦位配天洛書」와 「分配時方」의 二圖는 先儒의 說중에 없는 것을 易 중에서 西南得朋, 東北喪朋의 뜻, 또는 繁辭의 出乎震一章의 뜻을 취하여 만든 것이다. 그리고「蓍策各樣之圖」와 ≪啓蒙≫의 글과는 一致되지 않는 것이 있는 듯하나 이치는 둘이 아니므로 서로 害가 되지는 않는다고 보고 있다.
卷頭의 目次에 이어서 1576년(宣祖 9)에 倦翁 자신이 쓴 序文이 있고, 本文으로 易學의 圖象이 총 52圖가 차례로 실려 있는데, 「河圖生數統成數圖」라 하여 河圖에서의 生數와 成數와의 관계, 「洛書奇數統偶數圖」라 하여 洛書에서의 奇數와 偶數와의 관계등을 圖象化하고, 「 河圖相連爲十之圖」, 「洛書相對爲十之圖」등 10圖에서는 河圖와 洛書의 數論으로부터 相生·相克·互藏·消長 등 奧義를, 「先天八卦分居河洛之圖」{2} 등 3圖에서는 河圖洛書와 易의 八卦와의 關係性을, 「天地四象爲八卦之圖」{2} 등 8圖에서는 伏羲의 八卦에 대하여 다각적인 면에서 그 뜻은 모두 圖象으로 밝히고, 「伏羲六十四卦次序黑白之圖」등, 4圖에서는 伏羲의 六十四卦에 대하여 또한 다각적인 면에서 奧義를 圖象으로 밝혔다.
그리고 「文王八卦次序之圖」등 6圖에서는 文王의 八卦에 대하여 또한 다각적인 면에서 뜻을, 「乾卦變爲六十四卦之圖」에서는 乾卦가 六十四卦로 변하여 나아가는 원리를 圖象으로 밝히고 그 다음 「伏羲六十四卦分配節候之圖」를 다시 싣고, 「蓍策掛??陰陽老少各樣之圖」에서는 蓍에 있어서 陰陽老少의 관계가 이루어지는 모양을 圖象으로 밝히고, 「群卦卦畵之圖」 「벽卦黑白之圖」에서는 正月부터 12月까지를 周易의 泰 大壯 ?? 乾 ?? 遯 否 觀剝 坤 復 臨 등의 卦와 언결시켜 圖象으로 밝혔다.
그리고 위의 圖象을 간략하게 설명 하였다. 卷末에는 西厓 柳成龍이 쓴 跋文이 있다. 單卷의 木板本으로 初刊本은 著者가 죽은 후 얼마 있다가 李監司, 柳成龍 등에 의하여 이루어진 것으로 보이는데, 그 연대는 알 수 없으나 本篇을 지은 1576년으로부터 柳成龍이 죽은 1607년 사이에 이루어졌던 것인데, 이 所藏本은 그후의 重刊本으로 보인다.
이 책은 河圖, 洛書로부터 伏儀의 八卦, 六十四卦, 文王의 八卦와 乾卦로부더 六十四卦로 되어 가는 原理 등 易學의 전반적인 奧義를 52편의 圖象으로 나타낸 것이니 현금에 있어서도 易學을 硏究하고자 하는 데에 가치 있는 참고 典籍이 된다.
http://www.shinjongwoo.co.kr/name/ah/azb/vndtks/vnd5.ht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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