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續)짜집기 경주여행 3. 경주읍성, 경주문화원...
경덕왕릉 탐방을 마치고 무열왕릉과 김유신장군묘를 돌아보려고 하다가
원래 약속한 택시 요금이 훌쩍 넘는 것을 보고 택시기사에게 일방적으로 손해를 보라고
할 수가 없어서 생각을 바꾸었다.
두 곳은 다음에 기회가 되면 얼마든지 갈 수가 있는 곳이지 않은가.
일단 짐을 맡기기로 했다. 그리고 옛날 사진 밖에 없는 계림이나 그 옆의 내물왕릉,
그리고 아직 가보지 못한 경주향교, 최부자댁 등등을 도보로 가기로 마음을 바꾸었다.
사람마다 여행스타일이 다 다른 것은 당연지사.
이제까지 시간에 쫓겨 살다보니 내가 즐겨하는 여행은 주로 차를 몰고 단 시간에 많은 곳을 훑으면서
단위 시간당 엄청나게 많은 사진을 찍으면서 다니는 방법이다.
그럴 경우의 잇점은 어지간한 경우는 숙박하는 날 수를 줄일 수 있으니
대중교통을 이용함으로써 어쩔 수 없이 숙박일수를 늘이는 것보다는 비용면에서 불리할 것이 없다.
그런데 이번은 서울에서 단체로 버스를 타고 왔으니 짐이 문제였다.
짐을 어디엔가 놓아두어야 하는데, 마침 이날 아침 경주에 계신 유명한 블로거
깜샘님과의 통화 중에 소개해주신 시내의 등산용품점 K2 에 짐을 맡겼다.
그리고 비를 맞아가며 제일 먼저 간 곳이 경주 읍성터였다.
경주는 신라 천 년의 수도였을 뿐 아니라 고려시대에는 삼경 중 하나인 동경으로,
조선시대에도 경주부로서 지역의 중심이었다.
그러나 우리의 뇌리에는 신라 천 년의 수도였던 경주의 이미지만 강렬하게 남아 있다.
경주 시내 한 쪽에 남아 있는 고려나 조선 시대의 경주의 흔적은 사실 이곳을 찾는
외지 사람에게는 아무 것도 아닌 것이다.
경주읍성의 폐허에는 2007년에 세운 복원 정비 계획 안내판이 붙어 있다.
2012년에 성의 일부를 복원 완료한다고 되어 있는데 전혀 완공될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개인적인 의견으로는 복원을 안하는 것도 괜찮을 것 같다.
역사적 의미의 경주는 신라의 경주로서 충분할 것 같기 때문이다.
신라의 경주로서 유네스코 문화유산으로 지정도 되었고,
세계인이 즐겨 찾는 경주가 된 것이기 때문이다.
그 다음 찾아간 곳이 경주문화원이다.
경주문화원은 나에게는 추억의 장소중의 하나이다.
옛날 박물관이어서 초등학교 6학년 수학여행 당시 이곳에 걸린 에밀레종을 본 곳이기도 하고...
1962년 화폐개혁을 하기 얼마 전 단돈 4500환으로 2박 3일 수학여행을 갔다 온 곳.
그 수학여행의 추억에 대해서는 언젠가 회사 사우지에 썼던 콩트의 소재의 일부가 되기도 했었다.
경주,
국민학교 6학년 때 몇 날 며칠을 손 꼽으며 기다리다가 어머니가 사 주신
새 교복을 입고, 새 운동화를 신고 모자에 흰 커버를 씌워서 쓰고
몇 백원 용돈을 받아 들고는 완행 기차를 타고 희희낙락 다녀 왔던
2박 3일의 수학 여행의 추억이 서려 있는 곳.
난생 처음 타 본 기차에서 본 사람, 소, 시골집들이 모두 걸리버의 소인국에서나
등장할 정도로 장난감처럼 유난히 작게 보였던 기억.
문득 김수자의 해말갛던 얼굴이 떠올랐다. 그 때 나는 4학년까지 한 반이었던
김수자를 남몰래 좋아했었는데 불국사, 석굴암, 괘릉, 포석정, 계림, 첨성대,
반월성, 안압지, 에밀레종, 무열왕릉, 김유신장군 묘 등등 가는 곳마다
인솔 선생님의 설명이고 뭐고 모두 귓전으로 흘려 버리고 있다가,
그 애와 어쩌다 눈이라도 마주치면 황급히 시선을 거두곤 했던 것이다.
그 애는 지금은 어디서 무엇을 하고 있는지?
또 십 육칠년 만에 다시 가 보는 경주는 어떻게 바뀌어 있을 것인지? (하략)
경주문화원의 정문을 들어선다.
정면에 향토사료관(전시실)이 보인다.
독도와 종군위안부 문제로 한일간에 갈등이 첨예하게 대립되고 있는 요즈음인데
이곳에도 일제 침략의 흉한 상처가 남아 있다.
사료관 안에는 '온고각'(溫古閣)이라는 현판이 하나 남아 있다.
을사보호조약(1905) 이후 일본은 통감정치를 시작했는데 3대 통감으로
일본 육군대신 데라우치 마사다케(寺內正毅)라는 자가 부임을 하고
1910년 8월 29일의 경술국치- 강제병합 이후 초대 총독이 된다.
무단철권통치로 악명이 높은 자였는데 그 자가 쓴 현판이 남아서 보관되고 있는 것이다.
고교 시절 분하고 분한 마음을 달래가며 유주현의 '조선총독부(전 5권)'을 읽었는데
지금의 청소년들도 한 번쯤 읽어보고 지나간 굴욕의 역사를 되풀이하지 않아야 한다는
각오를 달리해야 할 것이다.
왼편으로 옛날 성덕대왕신종(에밀레종)이 걸려 있었던 종각건물이 보인다.
목조 건물에 18.9톤이나 되는 종을 매달 수 있을 정도로 탄탄하게 균형이 잡힌 건물이다.
초등학교 6학년 수학여행때 봤던 어마어마하게 큰 종이 걸려 있었던 것이 아직도 눈에 선하다.
그리고 오른 쪽 건물.
향토문화연구소라는 조그만 현판이 걸려 있다.
서쪽 건물인 집고관은 원래 경주읍성의 북문 근처에 있던 양무당이라는 건물이었는데
일제 때 이곳으로 옮겨왔다고 한다.
비가 오는데 전시실 앞 처마밑에서 연세가 지긋한 문화유산해설사 분이 앉아서 책을 읽고 계신다.
간단하게 몇마디 나누고 사료관으로 들어선다.
고려에서 조선시대에 걸친 경주 읍성에 대한 사항들, 거기 살던 사람들의 복식,
임진왜란 때의 항쟁, 무기류, 그리고 과거의 경주의 사진등을 전시하고 있다.
비가 오는 데다가 주중인 금요일이라 그런지 찾아온 사람은 나 혼자 밖에 없다.
경주읍성의 시간여행이라는 제목의 옛 경주사진 영상실...
구한말(?) 퇴락한 모습의 불국사.
성덕대왕신종을 현재의 경주문화원인 옛 박물관으로 옮기는 장면...
봉황대에서 본 현재의 대릉원 방향.
왼쪽 앞의 쌍분이 황남대총이고 제일 오른 쪽의 고분이 천마총이다.
첨성대거리.
안압지와 임해전
감은사지...
서봉총 발굴장면...
분황사의 모전탑...
관람을 끝나고 나오니 문화해설사님이 뒷편의 은행나무를 보고 가라고 하신다.
수령이 500년이 넘었다는 동부동 은행나무...
사료관 뒷편...
사료관 앞 양쪽에 있는 전나무 두 그루...
스웨덴 왕세자 구스타프가 1926년 서봉총을 발굴할 당시 기념 식수한 나무이다.
절구통 안에는 부레옥잠이 비를 맞고 있다.
그리고 수령 300년이라는 산수유나무...
날아가는 용같다고 비룡목이라는 이름이 붙었다는 해설사님의 설명이다.
속(續) 짜집기 경주여행 계속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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