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통자료

[스크랩] 속(續)짜집기 경주여행 6. 경주향교

회기로 2012. 9. 13. 21:50

속(續)짜집기 경주여행 6. 경주향교...

 

경주가 역사도시라고 불리는 근본 원인은 신라 수도 천 년의 역사때문이다.

그러나 신라의 경주가 끝난 후에도 1,200년 가까이 사람이 계속 살아온 이 땅에

그 후의 흔적이 어찌 없겠는가?

신라멸망 후에도 이어지는고려, 조선을 거쳐오는 동안 경주의 읍성도 그 흔적으로 남고

여기, 경주 향교도 그 흔적으로 남은 것이다.

경주향교는 신라 이후의 역사를 몸으로 끌어안고 있는 곳이다.

 

 

조선 500년 동안 이 나라의 통치의 정신적 지도 이념이었던 유교는

전국 곳곳에 유교의 교육 기관인 서원, 향교들을 남겨 놓았다.

지방의 국립 고등교육기관인 향교는 조선의 인재를 배출해내었던 배움의 산실이기도 하고

유학의 이념이 국가의 뿌리 깊숙히 박히도록 하는 종교적 성소이기도 했다.

성현들의 위패를 모신 사당(廟)이기도 했고 공자의 덕을 기리는 곳이기도 했다.

 

 

경주향교의 정문인 외삼문은 굳게 닫혀 있다.

그리고 정문 앞 길은 한창 공사중이었다.

 

 

 

경주향교의 자리는 신라의 국립대학인 '국학'의 터라고 한다.

말하자면 현재의 서울대학교인 셈인데 신라의 최초의 국립대학이 서벌(徐伐),

즉, 서울에 세워진 셈이니 그 이름의 재미있는 연결을 본다.

 

평상시 경주 향교에 들어가려면 옆문으로 들어가야 하는 것 같다.

렌즈에 빗물이 떨어져서 ㅠㅠㅠ...

 

 문을 들어서면 처음 만나는 건물이 관리인의 거처인 고직실(庫直室)...

고직실 앞의 우물은 신라 때부터 사용한 우물이라 한다.

조선시대에 사용한 신라우물이라...

왕조는 유한하되 우물은 영원하다?

 

고직실 맞은 편의 'ㄱ'자로 꺾인 건물이 전사청(典祀廳)이다.

 

고직실 뒤에 있는 건물인  전교실(典校室).

 

그리고 협문을 지나면 동재의 뒷모습이 보인다. 

 

그리고 향교의 강당겸 강의실인 명륜당의 앞마당으로 들어간다.

명륜당.

 

 

명륜당을 중앙에 두고 양쪽에 학생들의 기숙사인 동재와 서재를 두었다.

 

 

명륜당이 강학의 공간이라면 대성전은 성현을 모시고 제사를 지내는 향사(享祀)의 공간이다.

공자를 비롯한 중국의 5성(증자,안자,자사,맹자),

그리고 조선의 통치사상인 성리학(정주학 또는 주자학)의 비조 중국 송나라의 정자와 주자,

그리고 우리나라의 역대 유학의 성현 18현(신라 2현 : 최치원,설총. 고려 2현 : 안향, 정몽주.

조선 14현 : 김굉필, 정여창, 조광조, 이언적, 이황,김인후,이이,성혼,김장생,조헌,김집,송시열,송준길,박세채)

을 모신 자리이니 향교에서는 가장 존엄한 장소이다.

 

명륜당에서 본 경주향교 대성전의 뒷모습...

엄숙한 기운이 감돈다.

대성전의 양쪽 앞에 동무와 서무를 대칭으로 두었다.

 

서재의 뒤로 돌아서 대성전 앞으로 가 보았다.

대성전으로 들어가는 문인 신삼문(神三門)은 굳게 닫혀 있어서 담너머로 사진을 찍어 본다.

 

 

대성전의 정문인 신삼문.

 

들어갔던 길을 다시 돌아 나온다.

오른 쪽 건물이 서무.

담너머가 경주 최부자집이다.

 

왼 쪽 지붕과 벽이 서무,멀리 보이는 흰 벽의 건물이 동무이다.

중앙에 보이는 것이 신삼문...

 

오른 쪽 앞 건물이 서무, 가운데가 대성전, 멀리 있는 것이 동무,

왼 쪽에 동재와 협문이 보인다. 

 

대성전과 서무...

 

동무와 대성전...

 

다시 상용문으로 나와 오른 쪽으로 꺾어들어서  향교의 정문인 외삼문을 지나간다.

한창 도로 공사중인 것 같은데 우중이라 그런지 작업은 하지 않는다.

 

향교를 지나면 최부자집 방향으로 한창 건축중인 한옥들이 있다.

세월이 지나면 이 집들이 모두 문화재가 되지 않겠는가?

 

 

경주 최부자집으로 계속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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