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 游楓嶽記(李明漢)
금강이 천하에 명산이 되니 중국 사람도 우리 나라에 나서 금강산 보기를 원한다 하는데 하물며 우리 나라에 난 사람은 말할 게 있겠는가! 내 일찍 한번 보고 두번 보고자 하였는데 하물며 한번도 못 본 사람은 말할 게 있겠는가!
崇禎 庚辰(1640) 4월 13일에 내가 북쪽 순시로 인해 두 아들을 데리고 金城으로부터 단발령을 따라 산에 들어가니 趙使君 則見이 회양으로부터 왔고 申 防御使 起甫가 春川에서 오니 이날 밤은 長安寺에서 자다.
14일 일찍 일어나서 十王 百川洞을 따라 靈源寺를 찾고 大小 松蘿寺를 지나 表訓寺에 가서 쉬고, 천일대에 오니 날이 벌써 점심 때가 되었다. 正陽寺 東樓에 앉아서 만 이천 봉을 바라보니 역력히 눈 밑에 있는지라 문득 피리 소리가 만폭동에서 오는 것을 들었다. 사람들이 襄陽 韓부사가 온다고 하는데 南士重과 崔信叔이 또한 따라 오고, 金督郵는 人馬를 거느리고 祥雲界 위에서 기다리다가 인하여 岾을 넘어서 온다고 한다. 평생 자나 깨나 늘 생각하던 처지에 친구를 뜻밖에 서로 만나게 되니 진실로 기이하다.
여름철이 됐으므로 비가 오고, 비가 오지 않은 즉 안개가 있으니 여산의 진면목을 볼려 할진데 누가 韓子의 기도가 없겠는가? 우리들이 이 산에 들어온 지 3일 되는 날에 안개가 흩어지고 天地가 말끔히 개이고 산과 바위가 씻은 듯 깨끗하여 가히 풀과 나무를 헤아릴 수 있다. 맑은 기운이 화창하니 蘭亭風日뿐 아니다. 중이 말하길 “수십 년 내로 이 산에 놀러 오는 사람이 많되, 이 산에서 놀기는 쉽되 오늘처럼 맑은 날씨는 어렵다.” 하니 이 어찌 더욱 기이한 일이 아니겠느냐! 三太守가 각각 갖고 온 술과 안주가 있었고 잠간 사이에 달이 뜨거늘 옷을 풀고 앉아서 마실 때 나는 잔을 잡고 좌상에 올라 가로되, “산천은 흥이 한정 없고, 사람의 일은 족하지 못한 한이 있으니 우리들 오늘 노는 것은 근력으로 말하면 늙지도 젊지도 않지만 그래도 좀 늙은이에 가까운 것 같고, 절후를 말할진대 이르지도 늦지도 않으나 늦은 데 가까운 것 같고, 時勢를 말한 즉 편치도 위태롭지도 않으나 그래도 위태로운 쪽에 가까운 것 같으니 이것이 석양이 황혼에 가까운 자 아닌가? 비록 그러하나 근력은 오늘이 지나면 더 늙을 것이고, 절후는 오늘이 지나면 더욱 늦을 것 같고, 시세는 오늘이 지나면 더욱 위태로울 것 같다. 근력은 더욱 늙어지고 절후도 더욱 늦으며 시세 역시 더욱 위태로운 즉 비록 이 구경을 만들고자 하나 제대로 되겠는가? 그런 즉 이 금강산 구경을 기록해 두어야겠다. 『白洲集 卷16』
※최철(역), 동국산수기, 명문당, 1983. pp. 136-1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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