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 금강산기(배용길)
금강산은 관동의 옛 예맥 지역 안에 있다. 그 꿈틀거리고 아름다운 기운[扶興之氣]이 백두산에서부터 흥기하여 남쪽으로 천여 리까지 뻗쳐 해상에 이르러 한덩어리로 충만하게 쌓여, 위로는 아득한 하늘을 어루만지고 아래로는 드넓은 땅을 짓누르며 일만 이천봉 금강산이 되었다.
금강산을 둘러싸고 다섯 개의 읍이 있으니 동쪽은 통천․고성․간성이고, 서쪽은 회양․금성이다. 산 이름에는 여섯 개가 있으니 개골․풍악이라 한 것은 산의 실상으로 이름붙인 것이고, 금강․기달․열반․중향성이라 한 것은 불교에서 나온 것들이다. 내가 불교서적을 보지 못했기에 비록 민지의 기록이 있고, 남효온의 논의가 있다고는 해도 그 설이 어떤 것인지는 잘 모르겠다. 산에는 내산과 외산이 있으니 내산은 회양에 속했고, 외산은 고성에 속해 있다. 수령을 경계로 해서 외산의 형색은 다른 산들과 다르지 않고 다만 암석들이 봉우리를 이루어 높고 험준하며 웅대하여 여러 산들 중에서도 빼어나다. 내산의 산색은 희기가 눈 같아서 기이했다.
입산의 경로에는 다섯 가지가 있는데 내산으로 먼저 들어가는 경우, 하나는 회양에서 추지를 통하는 것이고, 하나는 통천에서부터 살령을 통하는 것인데 다 장안동으로 들어가게 된다. 살령의 남쪽 협곡은 좁고도 긴데, 평평하고 넓으며 높고 환해서 은자들이 소요할 만한 곳이다. 외산으로 먼저 들어가는 경우, 하나는 발연에서 백전 성문을 통하는 것인데 백천의 하류이다. 하나는 박달관에서 곧바로 불정대로 올라가는 것이고, 하나는 구점에서부터 유점사를 통하는 것인데 다 마하연으로 들어가게 된다. 발연․살령․불정대 이 세 경로는 너무 험준하기 때문에 경유하는 사람들이 드물다.
외산의 진면목은 양진역에서 다 드러나고, 내산의 뛰어난 경치는 정양사에 다 모여 있다. 봉우리 중에서 유명하다 할 수 있는 것으로는 관음․미륵․향로․도솔․개심대이니 양진역에서 보이는 것들이다. 비로․원적․안문․적멸․성불․천등․미륵․관음․달마․지장․수정․일출․월출봉은 정양사에서 보이는 것들이다. 계곡과 골짜기들 중에서 깊숙하고 험벽한 곳 가운데 구룡담이 가장 험벽하다. 봉우리들 중에 험준한 것으로는 비로봉․만경대․망고대가 선후를 가릴 수가 없다. 유람을 하려는 사람으로서 스스로 濟勝의 도구[경치 좋은 곳을 돌아다니며 구경하는 도구, 곧 튼튼한 다리]가 없으면 편안하게 다닐 수가 없을 것이다.
내산에는 담무갈보살이 상주하고 외산에는 오십삼불이 상주한다. 산에 있던 사람들 중 노인들은 이미 다 죽었고, 새로 온 자들은 모모 봉우리의 이름이 모모라고 지목해 말하지도 못하는데, 담무갈보살의 일만은 전해지며 없어지지 않았으니 괴이한 말은 잘하나 범상한 것은 잘 모른다고 할 만하다.
시내로는 만폭천과 시왕백천이 합해져 장안사 앞의 안문천으로 흘러 들어가는데 오른쪽으로는 유점사의 남산을 거쳐 세존백천, 지공백천과 합해져 고성 성 밖으로 흘러간다. 세존천 위로는 각도[험한 산골짜기에 높이 건너질러 놓은 나무다리]를 가로로 얽어서 사람들이 지나다니게 했다.
절 중에 길을 따라 있는 것으로 장안․표훈․정양․보덕․마하연․묘길상 같은 것들은 내산에 속해 있고, 불정․상하견성․유점사 같은 것들은 외산에 속해 있다. 그리고 장안사․표훈사는 도적의 침입에 불타서 전혀 옛 모습이 없어졌고, 유점사도 이미 재가 되었던 것을 중건했는데 구조가 극히 웅장했다. 절문 밖에는 옛날부터 산영루가 있는데 시내를 걸터앉은 으리으리한 모양으로 누대 아래서는 물고기들이 약동하고 있어 매우 사랑스러웠다. 근자에 임씨 성을 가진 감사가 깊은 시냇물을 다른 곳으로 끌어내고 또 구조를 고쳐놓으니 누대 아래 있던 옛 시내는 초목이 무성하게 우거져 올라가서 조망하는 데 도무지 어울리지가 않았다.
나무로는 단풍나무, 계수나무, 비파나무, 회나무, 적목, 자단이 있는데, 단풍나무가 삼분의 이를 차지하였고, 계수나무는 정양사․마하연 두 절에 각각 한 그루씩 있는데 氣味가 진짜는 아니었다. 수령의 동쪽에는 비파나무가 제일 많았고, 유점사에 이르러야 소나무와 가래나무가 있었다. 마하연 뜰 서쪽 어귀에 지공초라는 것이 있어 승려들이 돌로 단을 쌓아 보호하고 있었다. 또 기이한 화초 하나가 있는데 혹은 여섯 개, 혹은 여덟, 아홉 개씩 나는 잎은 아주 두꺼웠다. 이름이 없기에 내가 억지로 貝多葉이라 이름을 붙였다.
고적으로는 장안사에 무진등이 있는데 외양만이 겨우 남아 있는 데다 문빗장도 이미 부서졌는데 바로 원 순제가 만든 것이었다. 절 위에는 읍연이 있는데 부자 김동이 빠져 죽은 곳이라 하니 말이 황탄하다. 정양사에는 청사리 한 개를 유리동이에 담아 놓았으니 순제가 희사한 것이다. 당번[불당을 장식하는 기]은 넓고도 길어서 펼치면 땅에까지 서렸다.
만폭동 평지의 돌에는 “蓬萊楓嶽元化洞天”이라는 여덟 개의 커다란 글자가 새겨져 있었는데 바로 양사언이 쓴 것이다. 천 길 되는 바위 모퉁이에 학의 둥지가 있어 청학이 막 고개를 외로 틀고 한 다리를 든 채 졸려는 참이었다.
보덕굴 관음전은 한쪽 모퉁이는 구리 기둥에, 한쪽 모퉁이는 나무 기둥에 의지하여 공중에 매달아 만들었는데 제비 둥지 같았다. 다시 철로 만든 동아줄을 한쪽 끝은 전각의 기둥에, 한쪽 끝은 암석에 박아 얽어 동여 매었다. 아래로 천 길이나 되어, 사람이 전각 위로 다니면 흔들거려 두려웠다. 마하연의 한 높은 봉우리에는 동굴이 있어서 묘길상 아래 석벽에 새겨진 미륵상을 환하게 볼 수 있으니 바로 연우 2년(1315: 고려 충숙왕4) 4월이었다. 유점사에는 원순제가 희사한 노비에 관한 칙서와 본조 세조대왕의 舍身旨가 있는데, 끝에 惠雄, 惠溫, 惠屹이라는 작고 붉은 篆字가 있다.
산의 한 자락이 동북쪽으로 통천군 해변까지 이어져 총석정이 된다. 육지를 따라 4, 5리를 가면 기둥 같은 바위가 있는데 다 육면체이고, 길이는 혹은 2, 3장, 혹은 5, 6장인데 혹은 백여 개의 기둥이 합해져 한 무더기가 되고 혹은 4, 50개의 기둥이 합해져 한 무더기가 되고 혹은 바다로 떨어져 나가 섰거나 혹은 육지에 붙어 서서 중반 이남은 우뚝 서서 봉우리가 되고, 북쪽으로는 횡적되어 언덕이 되었다. 그 중에 4개의 봉우리가 가장 높고 빼어나니 이름을 사선봉이라 했다. 쌓인 것은 혹은 연방[중이 거처하는 방]같기도 하고 혹은 세상에서 만든 거북무늬 베갯머리 같기도 하고, 혹은 굽은 다리, 상다리 같은데 각각 짜임새가 있었다. 육지와 6, 7리 떨어진 해중에 섬이 있는데 동굴이 있어 배가 다닐 수 있고, 바위의 단면은 또한 다 육면으로 마치 꿀벌의 벌통이 공중에 매달려 있는 것 같았다. 만약에 방주를 타고 바다에 들어가지 않으면 그 진기하고 기괴한 경관을 다 볼 수가 없을 것이다. 안변의 국도의 바위들도 또한 그러하니 이 총석정의 맥은 반드시 국도에서 근원했을 것이라고 지방 사람들이 말했다.
※이혜순․정하영․호승희․김경미(공저), 조선 중기의 유산기 문학, 집문당, 1997. pp.223-226.
<원전> 금강산기, 裵容吉, 《琴易堂集》卷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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